꿈꾸는노란장미 2009. 7. 25. 11:29

웃는 얼굴들, 참고 견디고 작은 안정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고들 산다.

 

 밝은 햇빛 속에 성당에 고해하러 가는 소녀, 무슨 그리 큰 잘못을 했겠는가.

 

 남의 옷만 지어 주고 살아온 여인, 신부 옷을 짓는 게 제일 기쁘다고.

 

 월급날이면 월급이 갑절만 되었으면 하는 여직공, 그때가 되면 물가는 배가 될 텐데.

 

 손가방 속에 아기 기저귀가 들어 있었다. 탕녀蕩女 같은 그녀가 성녀聖女같이 보였다.

 

 신혼 때 입었던 잠옷을 입어 보고 일아보나 남편의 눈치를 살피는 중년 여인, 아직 싱싱하다.

 

 나를 만나 오랜만에 한국 웃을 웃어 보았다는 여인, 절어서 미인이라는 말을 듣던 그는 지금 뉴욕에서 외국인과 살고 있다.

 

 벌레를 한 마리 잡아다가 들여다보며 같이 밤을 새우는 희극 배우.

 

 장난감 자동차를 모아 놓고 그것들에 정을 붙이고 사는 소아과 의사.

 

 물감을 못 사고 연필로 스케치만 하는 화가는 가끔 양초를 녹여 작은 아기의 얼굴을 만들기도 한다.

 

 유행했던 자기 노래를 듣고 있는 가수.

 

 이제는 던지는 볼이 말을 안 듣는 유명한 투수. 관중은 조용히 보아주었다.

 

 손님도 웨이터도 다들 돌아간 텅 빈 식당에서 혼자 커피잔을 들고 있는 주방장.

 

 금요일 밤이면 '한국집' 에서 비빔밥을 사 먹고 가수 김상희 흉내를 내며 5가를 걸어가는 여대생.

 

 "신이여 나를 스물한 살만 되게 하여 주십소서. 그러면 나에게는 그를 설득시켜 볼 어섯 해가 더 있을 것입니다.." 그녀는 스물일곱이었다. 얼마 후 그녀는 우연히 그의 손길이 닿았던 긴긴 머리를 아주 잘라 버렸다. 사랑이 무엇인지.

 

 나에게는 아주 버릴 수 없는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그와 한 번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런 편지를 쓴 여인도 있다.

 

 다들 가엾다.

 

 고목에 싹이 트는 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노인, 70 평생을 반은 일본 압제 밑에서 살고 반은 둘로 갈라진 국토에서 살았다.

 

 자식이 어머니를 사모하듯 나라를 생각해 온 그는 한스럽고 부끄러운 일이 많다.

 

 정상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들은 다들 착하다.

 

 남을 동정할 줄 알고, 남이 잘되기를 바라고, 고생을 하다가 잘사는 것을 보면 기쁘다.

 

 시장 아주머니가 첫아기를 순산했다면 그저 기브고 아들인지 따인지 물어보고 싶다.

 

 고장난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비행기 안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도 기뻐한다. 중동에 휴전이 되었다면 기쁘고 파나마 조약이 인준되었대도 기쁘다.

 

 사람은 본시 연한 정으로 만들어졌다. 여린 연민의 정은 냉혹한 풍자보다 귀하다.

 

 우리 모두 여린 마음으로 돌아간다면 인생은 좀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