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노란장미 2009. 7. 26. 14:10

  "찰스 먼치가 지휘하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으시겠습니다" 하는 아나운서의 말을 들을 때면 심포니 홀을 생각하고, 연달아 보스턴 박물관을 연상한다.

 

 근 1년 동안 주말이면 나는 이 두 곳에 갔었다. 먼저 가는 곳은 박물관이었다. 유럽에서 사들인 그 수많은 명화들, 조각들, 루이 16세가 쓰던 가구들, 그러나 내가 먼저 가는 쪽은 그 반대편에 있는 작은 방이었다. 거기에는 그것들이 고요히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처음 그것들을 만났을 때, 나는 놀랐다.

 

 수십 년 전 내가 상해에 도착하던 날 청초하게 한복을 입은 젊은 여인이 걸어가는 것을 보았을 때 느낀 그 감격이었다.

 

 3백년, 5백 년, 7백 년 전의 우리나라 흙으로 우리 선조가 만들어 놓은 비취색, 짙은 옷색, 백색의 그릇들, 일품逸品인 상감포도당초문표형주전자象嵌葡萄唐草文瓢形酒煎子를 위시하여 장방형에 네 발이 달린 연지수금향로蓮地水禽香爐, 화문매병花文梅甁, 윤화탁輪花托 등 수십 점이 한 방에 진열되어 있었다. 이 자기들은 故 호이트(Hoyt) 씨가 수집한 것들로, 하버드 대학 포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을 그의 유언에 따라 보스턴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한다.

 

 이것들 중에도 단아한 순청주전자純靑酒煎子 하나는 시녀들 속에 있는 공주와도 같았다. 맑고 찬 빛, 자혜로운 선, 그 난초같이 휘다가 사뿐 머문 입매! 나는 만져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이었다.

 

 주말이 아니라도 불현듯 지하철을 타고 그것들을 보러 가는 때가 있었다. 내가 그곳을 떠나기 전날, 박물관 그 방을 찾아갔었다. 소환되지 않는 이 문화 사절들은 얼마나 나를 따라 고국에 오고 싶었을까?

 

 미국도 동북방7천 마일 이국에 그것들을 두고 온 지 십 년, 그것들이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순결純潔 · 정적靜寂 · 유원悠遠이 깃들어 있는 그 방 바로 옆방은 일본실이었다. 거기에는 '사무라이' 칼들이 수십 자루나 진열되어 있었다.

 

 무서운 동화를 읽은 어린아이같이 나는 자다 깨어 불안을 느낄 때가 있다.

 

 

 

=====================2009년 03월 16일 밤 10시 15분에 옮겨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