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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꿈꾸는노란장미 2015. 2. 13. 00:10

알함브라는 아랍어 그대로 '붉다'라는 뜻을 지닌 무어 왕조 시대의 요새이자 궁전으로 1238년 부터 1358년 사이에 지어졌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인 그라나다에 머물던 아랍군주의 저택이었으나 스페인 최후의 이슬람 왕국인 나사리 왕조의 보아브딜 왕은 스페인 국민의 국토회복운동에 굴복하여 평화적으로 이 성을 카톨릭 왕에게 건네주고 아프리카로 떠났다고 한다. 현재에는 이슬람 건축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크게 '헤네랄리페, 카를로스5세 궁전, 나스리궁전, 알카사바'로 나뉜다.

 

1492년 알함브라의 이슬람세력이 이사벨여왕과 페르난도 왕의 군대에 패하고 쫓겨나면서 기독교인들이 그라나다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후, 알함브라 궁전은 방치되었다가 미국인 워싱턴 어빙이 알함브라의 무어인들의 신비한 전설을 '알함브라의 전설'이라는 책으로 펴내자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게 되어 스페인 정부는 알함브라 궁전을 국가 기념물로 지정하고 복구하여 아름다운 궁전으로 되살려 놓게 되었다.

 

※ 잠깐!!

스페인의 역사를 이해하자면 남부 스페인 안달루시아에 가장 풍요롭고 아름다운 문화를 남긴 민족이 무어인이었는데 무어인은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살았던 이슬람계 사람들로서 코르도바를 중심으로 한 첫 이슬람 왕조가 1085년 가톨릭 세력에게 패망한 뒤 이베리아 반도엔 크고 작은 이슬람 왕조가 난립하는 건국시대가 이어진다. 그 중 가장 번창한 왕조가 세비야의 아바스 왕조였는데 세비야가 1248년 카스티야왕국에게 함락되고 이어 그라나다에 있던 이슬람세력이 1492년 카톨릭 왕에 의해 쫓겨나면서 이슬람 왕조는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지게 되기까지 무어인은 800여 년 동안 안달루시아 지역에 유럽 속의 이슬람 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웠다.

스페인 최후의 이슬람 왕국의 보아브딜 왕이 아프리카로 떠나게 되면서 스페인은 1238년 부터 시작되었던 약 8세기 간의 이슬람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근대 스페인의 탄생을 보게 된 것이다.

때문에 스페인의 생활, 문화, 종교에서는 이슬람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궁전이자 요새(알카사바)였던 이유로 과거의 대포를 아직도 볼 수 있다.

 

카를로스 5세 궁

 

 

병사들의 숙영지였던 곳이 터만 남아있다.

 

병사들의 식량 저장고

 

알카사바에서 알바이신지구(아랍인들의 마을)를 배경으로

 

 

 

아라야네스 중정, 후에 타지마할의 모델이 되었던 곳이라 함.

 

미국인 워싱턴 어빙이 복원했다는 천정

 

ㅁ자 형의 건물로 둘러싸여 있는 정원

 

 

 

헤네랄리페 Genefalife,

입구부터 사이프러스 나무에 둘러싸인 통로가 길게 뻗어있으며 크고 작은 분수와 흐르는 물이 동화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정원은 알함브라궁전의 여러 정원 중에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정원이라 하며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눈녹은 물을 끌여들여 사계절 꽃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정원이다.

 

 

 

 

 

 

알람브라라는 말은 아랍어로 '붉은색'을 뜻하는데, 햇볕에 말린 타피아(토담)의 색이나 외벽 쌓기에 쓰인 자잘한 자갈과 점토로 만든 벽돌의 색 때문에 이 이름이 붙은 듯하다.

그라나다 시 한가운데 솟은 고원에 세워진 이 궁전은 나스르 왕조를 창시한 이븐 알 아마르와 그 후계자들이 집권한 1238~1358년에 대부분 건설되었다. 궁전의 화려한 내부장식들은 유수프 1세(1354 죽음) 때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데, 1492년 무어인들이 축출된 뒤 대부분의 내부장식이 없어졌으며 가구들은 파괴되거나 철거되었다. 1516~56년에 스페인을 다스린 카를 5세(카를로스 1세)는 궁의 일부를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했고 일부는 허물어 1526년 페드로 데 마추카로 하여금 이탈리아풍 궁전으로 짓게 했다. 1812년 나폴레옹 군대 침략 때 탑 몇 개가 파괴되었고 1821년 지진으로 많은 손실을 입었다. 1828년에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무어 왕조 때 지어진 부분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알카사바, 즉 성곽인데, 지금은 거대한 외벽과 탑, 방벽들만이 남아 있다. 알카사바 안쪽에 알람브라 궁전이 있고, 그 안쪽에 알람브라 알타(상부 알람브라)가 있다. 알람브라 알타는 원래 관리와 시종들이 살던 곳으로 정부 소재지인 국왕도시의 일부였다.

이 궁전에서 으뜸가는 중정은 파티오 데 로스 아라야네스(Patio de los Arrayanes 도금양중정)와 파티오 데 로스 레오네스(Patio de los Leones:사자중정)이다. 파티오 데 로스 레오네스는 중정 가운데 힘과 용기의 상징인 12마리 흰 대리석 사자상으로 떠받친 설화석고 수반(水盤)인 '사자분수'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 알람브라 궁전에서 가장 중요한 방은 널찍한 접견실인 살라 데 로스 엠바하도레스(Sala de los Embajadores:외국사절실)와 널찍한 대접견실인 살라 데 로스 아벤세라헤스(Sala de los Abencerrages)이다. 이 방의 이름에 얽힌 전설에 따르면 그라나다의 마지막 왕 보아브딜이 아벤세라헤 일족의 우두머리들을 초대하여 이 방에서 연회를 열고 그들은 몰살시켰다고 한다. 그밖에 빼어나게 아름다운 종유장식(鍾乳裝飾)이 있는 살라 데 라스 도스 에르마나스(Sala de las Dos Hermanas:두 자매방)가 유명하다. 알람브라 외곽에 있는 건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헤네랄리페(Generalife:'건설자의 정원'이라는 뜻의 Jannat al ⁽Arῑf에서 유래)이다. 이 별장은 13세기말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출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