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노란장미 2015. 6. 5. 08:37

 

 

 

 

 

 

 

문득 이 사진을 보니 초임지 생각이 난다.
대학을 졸업하자 나는 운좋게 빨리 고흥 쪽으로 발령이 났다.
광주에서 고흥까지 다니는 일은 녹록지 않았었는데, 벌써 30년도 더 된 일이 되었다.

초중고대를 부모님 슬하에서 다녔기때문에 발령이 나서 혼자 사는 자취생활이 무척이나 신났다.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고 내가 누리는 자유와 해방감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달콤했을 뿐만 아니라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물건들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주말이면 대부분 선생님들은 부모님댁에 간다고 뺑소니치듯 학교를 빠져나가도 난 매주마다 광주에 가진 않았다.
대신 자취방에서 뒹굴뒹굴하며 마음껏 게으름을 피우기도하고 집으로 찾아 오는 제자들과 놀며 시간을 보냈다.

면에 하나뿐인 중학교여서 1시간 이상을 뛰거나 걸어서 등교하는 아이들도 많았고 우리 반에는 64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배정될 만큼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아이들은 순수했고 나의 교육에 대한 열정 역시 순수하고 뜨거운 시절이었다.
학기 초면 가정방문을 다니느라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지만 초짜교사인 나는 활활 타오르는 열정 덕에 힘들기는 커녕 교사로서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이 신기하고 뿌듯했다.

6월 초 쯤이면 학교 운동장 주변의 벚나무에서 까맣게 잘익은 버찌가 떨어지고 그 무렵이면 밭에서 누렇게 익은 보리를 베기 위해 농번기를 했다.
가끔은 학생들 인솔해서 보리베기 동원에 나가는 일도 있었지만 그 무렵에 하는 농번기는 우리들에게 무조건 대환영받는 행사였다.
기억나는 일들이 이 뿐이겠는가...

초임지에서 4년을 보내고 그 곳을 떠나 순천에 터를 잡고 살고 있지만 교사로서의 순수한 열정을 가장 불태웠던 곳이 초임지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추억거리가 많아 잊지 못할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