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탐방*;;* /북 유 럽 ▣

그리그 생가/ 노르웨이 베르겐

꿈꾸는노란장미 2019. 4. 5. 14:13



베르겐하면 솔베이지의 노래를 작곡한 음악가 그리그가 떠오른다.

여행 4일 째 되던 날에는 아침을 먹고 그리그 생가를 둘러보게 되었다.

 

이동하는 동안 친절한 가이드는 그리그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그는 5남매 중 셋째로 몸이 약해 어려서는 집에서 교육을 했는데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의 연주를 듣고서는 그대로 연주하곤 했다고 한다.

결국은 15세 때, 당시 북유럽의 파가니니라 불리던 바이올리니스트 올레 불(Ole Bull)의 조언으로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자연에서의 느낌을 표현한 서정적인 음악을 다수 작곡한 민족주의 음악가가 되었다.



콘서트 홀. 



그리그의 키와 똑같게 만든 동상.




작업실이었던 오두막집. 그리그는 이 오두막집에서 오로지 작곡에 몰두하였다고 한다.


 

그리그의 생가에는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오두막집과 공연장, 그리고 그리그 박물관이 있었는데 공연장과 작업실은 지붕에 잔디가 얹혀 있었다.

지붕 떼는 10년이 지나면 우리나라 초가지붕 갈듯이 갈아주어야 하므로 돈이 많은 부자들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하며, 잔디를 얹은 지붕이 있는 오두막엔 요정이 살 것 같기도 하고, 멀리서 보면 집인지 풀밭인지 구별이 힘들 정도였지만, 보온효과가 크다고 한다.

 

오두막집으로 내려가는 우측에 그리그의 실제 키로 만들어진 그리그의 동상이 있는데 그는 키가 작아서 항상 상대방을 올려다보며 대화를 해야 해서 자기가 죽은 후에는 무덤을 높은 언덕 바위에 만들어 달라고 했단다.

운명적으로 평생을 올려다보기만 했던 그리그는 죽어서라도 세상을 내려다보고 싶었나보다.

 

그 말을 기억한 친구의 노력으로 시 의회의 허락을 받아 무덤을 바위사이에 구멍을 뚫고 만들었는데 바다와 관광객을 내려다볼 수 있고 바다로 가라앉는 석양을 구경할 수 있는 명당자리였다.

 

그리그는 부유하였고 부유한 친구들과 어울렸으며, 호수 주변을 노닐며 자연으로부터 얻은 영감을 곡으로 표현하며 아주 풍족한 삶을 누렸다고 한다.

 

다만 말년의 약 10년간은 학생 때 앓은 폐병이 재발하여 어두운 나날을 보내야 했고 64세 때 출생지인 베르겐에서 사망했다.



그리그 생가. 지금은 박물관으로 개방하고 있다.



그리그의 무덤


무덤 쪽에서 바라다보이는 바닷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