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 중에 이런 분이 있다. 그는 미국에서 어러 해 고학을 하였다. 그런데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때보다 실직을 했던 때가 더 행복스러웠다고 한다. 주인에게 복종하느니보다는 호콩을 먹으면서 길을 걷는 것이 즐거웠었다고 한다.
귀국 후 그는 강습소 선생이 되었다. 서투른 일본말로 정규 학교에서 교원 노릇을 하는 것보다, 강습소에서 우리말로 가르치는 것이 마음이 편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강습소에서도 일어 상용日語常用을 강요당하자, 그 노릇을 그만두고 자기 고향인 진남포 근방에 가서 농사를 지었다.
해방이 되자 이북에서 하는 꼬락서니들이 보기 싫어서, 그는 즉시 가족을 데리고 월남하였다.
친구의 호의로 방을 하나 얻고 이불도 마련하였다. 영어가 세가 나는 때라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미 군정청 적산 관리처에, 거기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자리에 취직하였다. 그러나 그는 수개월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셋방살이를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꿍꿍이를 부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한 친구는 하도 답답하여,
"여보게, 자네는 거기 있으면서 왜 그 흔한 적산 가옥 하나 마련하지 못하나?"
하고 물었다.
"내가 돈이 어디 있나?"
"좀 먹지."
"치사하게."
그는 동료들이 하는 짓에 염증이 나서 적산 관리처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영어 선생을 오랫동안 하였다. 2년 전에 정년 퇴직을 당하고, 그는 지금 시간 강사를 하고 있다.
언제나 처세를 잘하여 거대한 재산을 소유하게 된 모씨는, 그가 자식들의 학비 하나 제대로 대지 못한다고 그의 무능을 비웃었다. '무능'한 그는 지금 남의 집 옆채에 세도 안 내고 들어 있다. 좋아하는 커피도 못 마시고 어떤 집에서 '커피'를 대접하면 진하게 한 잔 더 달라고 한다. 국유 재산 부정 불하에 관여한 분들이 그것을 보면 그를 치사하다고 할 것이다.
=================2009년 03월 17일 오후 5시 53분에 옮겨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