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목수열전_ 가늘고 긴 목수 이택영 씨
닉네임 '가늘고 긴 목수'. 욕심 부리지 않고 꾸준히 한 길을 걷고자 하는 이택영 씨의 철학을 담은 이름이다. 건축 현장에만 20년째, 지은 집만 해도 60채가 족히 넘지만 그는 인터뷰 내내 낮은 목소리로 정제된 단어들만 골라 썼다. 한 마디 한 마디 생각을 담아 하는 말은 느렸지만, 그 진심은 깊이 전해졌다.
건축주보다 빌더들 사이에서 더 유명한 분이다. 뵙게 되어 영광이다
인터뷰 요청을 받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자격이 있을까 걱정도 되고, 함께하는 팀원들의 노고가 큰데 혼자 나와 인터뷰를 하는 것도 주저됐다. 다만, 일반인들에게 목수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들려주고자 고민을 접고 이 자리에 왔다.
대기하고 있는 건축주들이 워낙 많다고 들었다
모든 현장이 바쁘게 돌아간다. 한 현장이 끝나면 다음 현장으로, 쉴 틈이 없다. 바쁜 가운데서도 예전보다 건축주와의 소통이 더 나아지고, 의사 결정이 합리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젊은 건축주들이 많아져서 그런 것 같다. 지난해는 요청을 받고도 못 지은 집이 20채 정도 되는 것 같다.
불신이 팽배한 건축 시장에서, 신뢰를 얻는 비결이 따로 있나
'싸고 좋은 집'은 없다. 많은 온라인 카페에서 건축주의 심리를 이용해 마케팅하고, 그런 추세를 더욱 부추기는 모습들을 보면 안타깝다. 우리 팀은 '안 되는 것은 확실히 안 된다'고 말한다. 시공 경험이 많고 스스로 각성이 되어 있는 빌더일수록 건축주가 원하는 것을 무조건 오케이하지 않는다. 집은 사고가 생기면 어마어마한 금전적 손실은 물론 최악에는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부분을 건축주들이 좋게 봐 주시는 것 같다.
목조주택은 언제 시작했나
원래 건축을 전공하고 95년부터 건설회사에서 일을 했다. 퇴촌의 한 현장을 관리하던 때, 근처 목조주택 현장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당시 부지와 건축을 합쳐 거의 50억원 정도 들인 집이었는데, 미국에서 자재는 물론 목수들까지 전부 초빙해 짓고 있었다.
백발의 키 큰 목수가 문을 달면서 여러 번 닫았다 열었다하며 정교하게 작업하는 것을 보고 놀랐고, 그 문을 직접 여닫아 보고는 부드러움과 자연스러운 소리에 더 놀랐다. 국내 건축 현장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동이었다. 그때부터 목조주택에 대한 독학이 시작됐다.
이론과 현장은 다르지 않나
책을 보면서 남의 현장도 계속 다녔다. 그런데 현장에선 정작 중요한 것은 가르쳐주지 않더라. 지시에 따라 단순한 작업만 하지, 지식을 배우기는 어려웠다. 고용자에겐 나의 노동력이 우선이니까. 때문에 밤에 공부한 것을 현장에서 눈여겨보면서 혼자 경험치를 늘려갔다. 다행히 평생 건축만 알던 사람이라 습득은 좀 빠른 편이었다.
몸을 움직이는 일이 적성에 맞나
물론 처음에는 '건축기사에 관리자 출신인데, 내가 왜 망치를 잡나'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놓아야 했다. 이론만 가지고는 안 되고 현장에서 모든 상황을 익혀야 했다. 또한 그래야 팀원들을 이해하며 같이 갈 수 있다.
본인이 생각하는 목조주택의 매력은
목조주택은 다른 공법과 달리 섬세한 부분이 많다. 경량일수록 더욱 기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창의력을 요할 때도 많아 매 현장이 새롭고 흥미진진하다. 올바른 자재로 올바르게 짓는다면, 여러 시공 방식 중에 무척 좋은 공법이라고 믿고 있다.
국내에는 목조주택이 지역별로 인기를 탄다
양평만 해도 이전에는 목조주택의 메카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당시 지어졌던 집들이 썩고 냄새 나는 하자들을 겪으며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제대로 지어야 할 구조는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하고, 마감만 깔끔하게 해서 건축주를 현혹시키는 현장들이 아직도 많다. 사실 잡지 같은 매체들도 평면도와 겉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 아닌가.
맞는 말이다. 그럼 목조주택의 구조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건축에는 '테크니션'와 '엔지니어'가 있다. 테크니션은 망치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하느냐 하는 것이고, 엔지니어는 형태를 보고 구조적으로 안전성을 확보하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 목조주택 교육에는 '샛기둥은 이렇게 박아라'만 있지 왜 이런 부재를 여기에 써야 하는지 원리를 가르치는 곳이 없다.
집이 처진다거나 하는 구조적인 결함은 교재 한두 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부재로 쓰는 수종도 다양하고, 하중도 여러 원인과 방향에서 온다. 국내 목조주택 시장에서는 이런 것들은 거의 다루지 않아 안타깝다.
개인적으로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
구조계산은 사실 재료역학부터 시작해야 하는 분야다. 집을 설계하는 건축사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미국임산물협회에서 발행하는 교육 자료를 다운받아 팀원들과 스터디를 하고 인스펙터(감리) 자료들을 챙겨 꾸준히 연구한다. 그래도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다.
목조주택 설계를 직접 맡을 경우도 많나
이곳 양평 주택의 경우는 건축주가 설계자에게 도면을 받아 왔다. 그런데 내가 '도저히 지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구조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집을 어떻게 짓나. 다행히 건축주가 우리 의견을 들어줘 이미 낸 설계비는 포기하고 다시 설계를 했다. 스케치업으로 그리면서 건축주와 몇 번을 오가며 완성했다.
건축주들에게 깐깐한, 심할 땐 고지식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요즘 건축주들은 장스팬, 높은 천장 등 요구하는 평면이 매우 다양하다. 목조주택은 분명 한계가 있고, 주어진 건축 예산 안에서 무리를 하면 당연히 하자나 부실시공으로 연결될 수 있다. 신상품 자재라고 제시하는 것도 거절한다. 국내 목조주택에 적용된 지 3~4년은 지나 품질이 어느 정도 인정된 자재만 써야 한다. 이렇다 보니 건축주들이 '본인 말을 안 들어준다'고 불평들을 한다. 그들을 설득하는 것도 내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건축에서 가장 무게를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
하자 없는 집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건축주를 위한 일이자, 나를 위한 일이다. 입주 후 하자보증기간이 2년인데, 집에 문짝 하나가 고장 나면 하루를 팀원과 다녀와야 한다. 인건비, 유류비, 숙박비까지 어떨 때는 백만원이 우습다.
하자 문제로 시달리는 빌더들이 많은 것 같다
지난 번 태풍 삼바가 왔을 때 초속이 굉장히 셌다. TV에서 '목조주택이 붕괴될 수 있는 시점의 바람'이라고 하는 통에, 그날 밤잠을 설쳤다. '혹시 내가 집 지을 때 무슨 실수를 하진 않았을까, 짓고 나서 다른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다음 날 새벽 5시에 건축주들에게 모두 전화를 걸어 '별일 없다'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한시름 놓았다. 처음부터 하자 상황을 철저히 배제시켜야 건축주도, 우리도 좋다. 그래서 기본 품목일수록 더욱 검증된 자재로 최대한 신경 써서 시공하게 된다.
국내 목조주택 자재 시장은 어떻게 보나
요즘은 자재 쪽에 관심이 많다. 직구로 뭐든 가능한 세상이 되었으니까. 그런데 알고 볼수록 한국의 자재 시장은 놀랄 일이 많다. 예를 들어 수입창호들을 보면 그 브랜드에서 제일 낮은 사양의 제품들이 들어온다. 자재상에서 '좋은 자재'라고 추천받는 제품은 그냥 국내에서 판매하는 제품일 뿐이다. 미국에서는 그 지역에 쓸 수 없는 자재는 아예 자재상에서 팔지를 않는다. 이런 자재들은 형태는 맞출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주로 쓰는 자재를 알려 달라
목조주택 단열재는 고밀도21 인슐레이션을 쓰고 외단열을 할 경우는 숙성 6주 지난 EPS를 택한다. 수성연질폼도 단열과 흡음에 좋은 자재로 본다. 단, 폼을 쏜 다음 표피층을 깎아준다는 전제 아래 써야 한다. 깎아낼 정도면 발포량이 거의 배로 들어가고 인건비에 폐기물처리비까지 하면 비용은 크게 높은 편이다. 존스 맨빌의 '스파이더'나 크나우프의 '에코필'도 가격은 높지만, 좋은 자재로 지켜보고 있다.
단열재는 자재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꼼꼼하게 시공했느냐가 문제다. 단열재를 채우면 열화상카메라로 한번 쭉 찍어 테스트를 하는데, 겉으로 보기엔 잘 채워졌어도 빈틈이 잡힐 때가 있다. 그런 확인 작업이 더 중요하다.
창호는 어떤 제품을 주로 선택하나
늘 고민 중인 부분이다. 40평 규모의 고급주택에 창호 값은 고작 8백만원 쓰는 게 우리나라다. 그러니 외국에서 테러리스트 수준의 창이라 평가받는 창들이 국내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유럽식과 유럽산, 미국식과 미국산을 소비자들이 구별해야 한다. '식'이란 국내에서 조립하는 창이고 '산'은 완제품을 수입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프레임만큼 유리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운 날 집 안에서 유리에 손을 대고 '앗, 뜨거워! '한다면, 그 집은 한 여름 비닐하우스나 마찬가지다.
최근 지은 집들에 유독 세라믹사이딩이 많이 보인다
목조주택 외장재로서 봤을 때, 내구성으로는 제일 좋은 것 같다. '케이뮤'와 '아이큐브'가 있는데, 케이뮤는 그 안에도 등급이 있고 아이큐브는 14㎜, 16㎜ 두 종류로 되어 있다. 가격은 아이큐브가 조금 더 비싸다. 이들은 전용 브라켓이나 코너 제품이 있어 시공이 편하고, 물만 뿌려도 땟물이 씻겨 내려서 건축주들이 살면서 만족을 표한다. 그런데 가격이 워낙 비싸 시공할 때마다 손이 떨린다(하하).
"우리가 아무리 잘났다 한들 꿈을 희망하는 모든 이의 일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집은 목수에겐 지나는 현장이고 순간이지만, 사는 사람에겐 평생이다"
함께 일하는 팀원들과 유대는 어떤가
같이 자고 일하고 밥 먹고 거의 24시간을 붙어 있으니, 식구보다 더 가까운 것 같다. 물론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하는 이도 있고, 금전적인 이윤을 쫓아 움직이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골조만 하는 게 아니라, 집 전체를 다루다보니 전부 배우려면 족히 1년은 걸린다. 골조팀 같이 몸값을 쉽게 올려받을 수 있는 현장으로 갈 수도 있다. 그건 본인 의지와 선택의 문제다.
외국에는 오히려 골조, 마감 등 파트별 전문팀이 작업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
만일 한 지역에 1년 지을 집들이 모여 있다면 가능할 수 있다. 오래 파트너 관계를 맺어 온 지역 업체들과 분야별로 집을 완성하는 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목조주택 수요가 적으니, 동네가 아니라 전국을 대상으로 움직여야 한다. 지방에서 굵직한 부분들을 외주로 했다가는 관리가 안 된다.
전국을 다니는 일이 힘들지 않나
빌더들 대다수가 집에 거의 못 들어간다. 주말에도 일하고, 비 오는 날에야 쉰다. 빨리 끝내야 기다리고 있는 다음 현장으로 갈 수 있다. 작년에도 명절 포함해서 7번 정도 집에 갔나보다.
일이 너무 힘들고 사람들에게 지쳐 그만 둘 생각을 한 때도 있다. 딸아이들을 앉혀 놓고 의향을 물으니 "아빠 일이 너무 싫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작은 애가 슬며시 "그래도 아빠는 우리 친구들 집을 지어주잖아요"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건축주들에게 얻는 즐거움도 있지 않나
요즘 젊은 건축주들은 쿨하다.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요구하고 공시비를 같이 고민한다. 그렇다보니 집을 짓고 나서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편하게 지낸다. 건축주에게 집은 평생 번 돈을 쓰는 일이니 예민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내 맘도 편해진다.
요즘은 건축주들이 집짓기 전 온라인으로 정보 수집을 많이 한다
목조주택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건축주들이 모여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는 살벌한 존재다. 신생 업체들이 건축주에게 한 번 잘못 보여 순식간에 몰락하는 것을 종종 봤다. 커뮤니티를 오히려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 뒤에 모종의 이익 집단도 있는 것 같고, 보고 있으면 답답할 때가 많다.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전문가 수준의 댓글들도 참 많은데
건축을 전문적으로 한 사람도 건축을 쉽게 논하기 어렵다. 그런데 관련 없는 직종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석 박사 수준의 댓글을 단다. 본인도 검색하고 댓글을 달텐데, 그렇게 몇 번을 하다가 그 분야의 전문가인양 행동하니 건축주들이 현혹되기 쉽다. 안타까운 현상이다.
예비 건축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건축주들 중에 현장에서 집을 지어주는 우리보다 하루 왔다가는 도배사 말을 믿고 성화를 내는 이들도 있다. 그럴 때는 정말 섭섭한 마음이 든다. 매 공정을 사진 찍어 인터넷 카페에 올린 다음, 사람들의 댓글을 기다리는 건축주들이 있다. 모든 게 불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현장에서 묻고, 현장에서 소통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 건축주를 직접 만나 본 적 있나
아쉽게 나는 못 만나봤다. 이 집 건축주는 공사 내내 현장에 딱 4번 오더라(하하).
앞으로 빌더로서 이루고 싶은 것은
요즘은 망치를 잘 안 들려고 한다. 후배들이 더 클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내가 한 자리에 계속 있으면 후배들은 계속 노동력을 착취당할 수밖에 없다. 컷맨은 적힌 치수대로 하루종일 나무만 자르고, 건맨은 올려준 자재를 하루종일 박기만 한다. 수동적인 작업만 하다 보면 발전이 없다. 나 같은 사람이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 빠져 나가야지, 후배들이 더 커서 팀장이 되어 자기가 온전히 집을 맡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포지션을 말하는가
나는 건축주들과 더욱 소통하고 현장의 감리를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 CM 같은 매니지먼트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현장을 믿고 맡길 수 있는 팀장들을 많이 키워서, 긍정적인 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다. 회사가 아닌 패밀리로 움직이는 목수 집단, 이를 위해 함께 쓸 수 있는 열화상카메라나 전문 목공 장비들을 서서히 갖춰가고 있다.
목조주택 일을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시장에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보다 말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 '말칠행삼(말은 7이고 행동은 3)은 되지 말자'가 우리 팀의 모토인 이유다.
괜찮은 목조주택 빌더가 되기까지는 참고 견디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이론에 기술적인 노하우까지 축적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시간을 견디면 그만한 대가가 기다리고 있다. 젊을 때 열정을 갖고 현장에 매달리면, 30대 중반부터는 정당한 대접을 받으며 살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다.
돈은 성심성의껏 하다보면 언젠가는 따라온다. 집 짓는 일이 내 일생이라고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다르다. 그래야 즐길 수 있다.
월간 <전원속의 내집>의 기사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습니다. 무단전재, 복사, 배포는 저작권법에 위배되오니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요청을 받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자격이 있을까 걱정도 되고, 함께하는 팀원들의 노고가 큰데 혼자 나와 인터뷰를 하는 것도 주저됐다. 다만, 일반인들에게 목수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들려주고자 고민을 접고 이 자리에 왔다.
대기하고 있는 건축주들이 워낙 많다고 들었다
모든 현장이 바쁘게 돌아간다. 한 현장이 끝나면 다음 현장으로, 쉴 틈이 없다. 바쁜 가운데서도 예전보다 건축주와의 소통이 더 나아지고, 의사 결정이 합리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젊은 건축주들이 많아져서 그런 것 같다. 지난해는 요청을 받고도 못 지은 집이 20채 정도 되는 것 같다.
불신이 팽배한 건축 시장에서, 신뢰를 얻는 비결이 따로 있나
'싸고 좋은 집'은 없다. 많은 온라인 카페에서 건축주의 심리를 이용해 마케팅하고, 그런 추세를 더욱 부추기는 모습들을 보면 안타깝다. 우리 팀은 '안 되는 것은 확실히 안 된다'고 말한다. 시공 경험이 많고 스스로 각성이 되어 있는 빌더일수록 건축주가 원하는 것을 무조건 오케이하지 않는다. 집은 사고가 생기면 어마어마한 금전적 손실은 물론 최악에는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부분을 건축주들이 좋게 봐 주시는 것 같다.
목조주택은 언제 시작했나
원래 건축을 전공하고 95년부터 건설회사에서 일을 했다. 퇴촌의 한 현장을 관리하던 때, 근처 목조주택 현장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당시 부지와 건축을 합쳐 거의 50억원 정도 들인 집이었는데, 미국에서 자재는 물론 목수들까지 전부 초빙해 짓고 있었다.
백발의 키 큰 목수가 문을 달면서 여러 번 닫았다 열었다하며 정교하게 작업하는 것을 보고 놀랐고, 그 문을 직접 여닫아 보고는 부드러움과 자연스러운 소리에 더 놀랐다. 국내 건축 현장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동이었다. 그때부터 목조주택에 대한 독학이 시작됐다.
↑ 함께 일하는 팀원들의 모습. 신나는 음악 소리에 맞춰 열정적으로 일하는 젊은 목수 집단이다.
이론과 현장은 다르지 않나
책을 보면서 남의 현장도 계속 다녔다. 그런데 현장에선 정작 중요한 것은 가르쳐주지 않더라. 지시에 따라 단순한 작업만 하지, 지식을 배우기는 어려웠다. 고용자에겐 나의 노동력이 우선이니까. 때문에 밤에 공부한 것을 현장에서 눈여겨보면서 혼자 경험치를 늘려갔다. 다행히 평생 건축만 알던 사람이라 습득은 좀 빠른 편이었다.
몸을 움직이는 일이 적성에 맞나
물론 처음에는 '건축기사에 관리자 출신인데, 내가 왜 망치를 잡나'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놓아야 했다. 이론만 가지고는 안 되고 현장에서 모든 상황을 익혀야 했다. 또한 그래야 팀원들을 이해하며 같이 갈 수 있다.
본인이 생각하는 목조주택의 매력은
목조주택은 다른 공법과 달리 섬세한 부분이 많다. 경량일수록 더욱 기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창의력을 요할 때도 많아 매 현장이 새롭고 흥미진진하다. 올바른 자재로 올바르게 짓는다면, 여러 시공 방식 중에 무척 좋은 공법이라고 믿고 있다.
국내에는 목조주택이 지역별로 인기를 탄다
양평만 해도 이전에는 목조주택의 메카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당시 지어졌던 집들이 썩고 냄새 나는 하자들을 겪으며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제대로 지어야 할 구조는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하고, 마감만 깔끔하게 해서 건축주를 현혹시키는 현장들이 아직도 많다. 사실 잡지 같은 매체들도 평면도와 겉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 아닌가.
맞는 말이다. 그럼 목조주택의 구조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건축에는 '테크니션'와 '엔지니어'가 있다. 테크니션은 망치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하느냐 하는 것이고, 엔지니어는 형태를 보고 구조적으로 안전성을 확보하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 목조주택 교육에는 '샛기둥은 이렇게 박아라'만 있지 왜 이런 부재를 여기에 써야 하는지 원리를 가르치는 곳이 없다.
집이 처진다거나 하는 구조적인 결함은 교재 한두 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부재로 쓰는 수종도 다양하고, 하중도 여러 원인과 방향에서 온다. 국내 목조주택 시장에서는 이런 것들은 거의 다루지 않아 안타깝다.
개인적으로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
구조계산은 사실 재료역학부터 시작해야 하는 분야다. 집을 설계하는 건축사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미국임산물협회에서 발행하는 교육 자료를 다운받아 팀원들과 스터디를 하고 인스펙터(감리) 자료들을 챙겨 꾸준히 연구한다. 그래도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다.
목조주택 설계를 직접 맡을 경우도 많나
이곳 양평 주택의 경우는 건축주가 설계자에게 도면을 받아 왔다. 그런데 내가 '도저히 지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구조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집을 어떻게 짓나. 다행히 건축주가 우리 의견을 들어줘 이미 낸 설계비는 포기하고 다시 설계를 했다. 스케치업으로 그리면서 건축주와 몇 번을 오가며 완성했다.
건축주들에게 깐깐한, 심할 땐 고지식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요즘 건축주들은 장스팬, 높은 천장 등 요구하는 평면이 매우 다양하다. 목조주택은 분명 한계가 있고, 주어진 건축 예산 안에서 무리를 하면 당연히 하자나 부실시공으로 연결될 수 있다. 신상품 자재라고 제시하는 것도 거절한다. 국내 목조주택에 적용된 지 3~4년은 지나 품질이 어느 정도 인정된 자재만 써야 한다. 이렇다 보니 건축주들이 '본인 말을 안 들어준다'고 불평들을 한다. 그들을 설득하는 것도 내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건축에서 가장 무게를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
하자 없는 집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건축주를 위한 일이자, 나를 위한 일이다. 입주 후 하자보증기간이 2년인데, 집에 문짝 하나가 고장 나면 하루를 팀원과 다녀와야 한다. 인건비, 유류비, 숙박비까지 어떨 때는 백만원이 우습다.
하자 문제로 시달리는 빌더들이 많은 것 같다
지난 번 태풍 삼바가 왔을 때 초속이 굉장히 셌다. TV에서 '목조주택이 붕괴될 수 있는 시점의 바람'이라고 하는 통에, 그날 밤잠을 설쳤다. '혹시 내가 집 지을 때 무슨 실수를 하진 않았을까, 짓고 나서 다른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다음 날 새벽 5시에 건축주들에게 모두 전화를 걸어 '별일 없다'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한시름 놓았다. 처음부터 하자 상황을 철저히 배제시켜야 건축주도, 우리도 좋다. 그래서 기본 품목일수록 더욱 검증된 자재로 최대한 신경 써서 시공하게 된다.
국내 목조주택 자재 시장은 어떻게 보나
요즘은 자재 쪽에 관심이 많다. 직구로 뭐든 가능한 세상이 되었으니까. 그런데 알고 볼수록 한국의 자재 시장은 놀랄 일이 많다. 예를 들어 수입창호들을 보면 그 브랜드에서 제일 낮은 사양의 제품들이 들어온다. 자재상에서 '좋은 자재'라고 추천받는 제품은 그냥 국내에서 판매하는 제품일 뿐이다. 미국에서는 그 지역에 쓸 수 없는 자재는 아예 자재상에서 팔지를 않는다. 이런 자재들은 형태는 맞출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주로 쓰는 자재를 알려 달라
목조주택 단열재는 고밀도21 인슐레이션을 쓰고 외단열을 할 경우는 숙성 6주 지난 EPS를 택한다. 수성연질폼도 단열과 흡음에 좋은 자재로 본다. 단, 폼을 쏜 다음 표피층을 깎아준다는 전제 아래 써야 한다. 깎아낼 정도면 발포량이 거의 배로 들어가고 인건비에 폐기물처리비까지 하면 비용은 크게 높은 편이다. 존스 맨빌의 '스파이더'나 크나우프의 '에코필'도 가격은 높지만, 좋은 자재로 지켜보고 있다.
단열재는 자재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꼼꼼하게 시공했느냐가 문제다. 단열재를 채우면 열화상카메라로 한번 쭉 찍어 테스트를 하는데, 겉으로 보기엔 잘 채워졌어도 빈틈이 잡힐 때가 있다. 그런 확인 작업이 더 중요하다.
창호는 어떤 제품을 주로 선택하나
늘 고민 중인 부분이다. 40평 규모의 고급주택에 창호 값은 고작 8백만원 쓰는 게 우리나라다. 그러니 외국에서 테러리스트 수준의 창이라 평가받는 창들이 국내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유럽식과 유럽산, 미국식과 미국산을 소비자들이 구별해야 한다. '식'이란 국내에서 조립하는 창이고 '산'은 완제품을 수입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프레임만큼 유리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운 날 집 안에서 유리에 손을 대고 '앗, 뜨거워! '한다면, 그 집은 한 여름 비닐하우스나 마찬가지다.
최근 지은 집들에 유독 세라믹사이딩이 많이 보인다
목조주택 외장재로서 봤을 때, 내구성으로는 제일 좋은 것 같다. '케이뮤'와 '아이큐브'가 있는데, 케이뮤는 그 안에도 등급이 있고 아이큐브는 14㎜, 16㎜ 두 종류로 되어 있다. 가격은 아이큐브가 조금 더 비싸다. 이들은 전용 브라켓이나 코너 제품이 있어 시공이 편하고, 물만 뿌려도 땟물이 씻겨 내려서 건축주들이 살면서 만족을 표한다. 그런데 가격이 워낙 비싸 시공할 때마다 손이 떨린다(하하).
↑ 주말주택답게 단출하게 꾸민 거실
↑ 주방은 다용도실을 통해 외부와 이어진다.
↑ 인터뷰가 이루어진 곳은 이택영 씨가 최근 지은 양평 주택이었다. 이 집은 젊은 부부의 주말주택으로 유지관리가 쉬운 콤팩트한 규모다.
"우리가 아무리 잘났다 한들 꿈을 희망하는 모든 이의 일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집은 목수에겐 지나는 현장이고 순간이지만, 사는 사람에겐 평생이다"
같이 자고 일하고 밥 먹고 거의 24시간을 붙어 있으니, 식구보다 더 가까운 것 같다. 물론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하는 이도 있고, 금전적인 이윤을 쫓아 움직이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골조만 하는 게 아니라, 집 전체를 다루다보니 전부 배우려면 족히 1년은 걸린다. 골조팀 같이 몸값을 쉽게 올려받을 수 있는 현장으로 갈 수도 있다. 그건 본인 의지와 선택의 문제다.
외국에는 오히려 골조, 마감 등 파트별 전문팀이 작업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
만일 한 지역에 1년 지을 집들이 모여 있다면 가능할 수 있다. 오래 파트너 관계를 맺어 온 지역 업체들과 분야별로 집을 완성하는 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목조주택 수요가 적으니, 동네가 아니라 전국을 대상으로 움직여야 한다. 지방에서 굵직한 부분들을 외주로 했다가는 관리가 안 된다.
전국을 다니는 일이 힘들지 않나
빌더들 대다수가 집에 거의 못 들어간다. 주말에도 일하고, 비 오는 날에야 쉰다. 빨리 끝내야 기다리고 있는 다음 현장으로 갈 수 있다. 작년에도 명절 포함해서 7번 정도 집에 갔나보다.
일이 너무 힘들고 사람들에게 지쳐 그만 둘 생각을 한 때도 있다. 딸아이들을 앉혀 놓고 의향을 물으니 "아빠 일이 너무 싫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작은 애가 슬며시 "그래도 아빠는 우리 친구들 집을 지어주잖아요"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건축주들에게 얻는 즐거움도 있지 않나
요즘 젊은 건축주들은 쿨하다.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요구하고 공시비를 같이 고민한다. 그렇다보니 집을 짓고 나서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편하게 지낸다. 건축주에게 집은 평생 번 돈을 쓰는 일이니 예민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내 맘도 편해진다.
요즘은 건축주들이 집짓기 전 온라인으로 정보 수집을 많이 한다
목조주택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건축주들이 모여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는 살벌한 존재다. 신생 업체들이 건축주에게 한 번 잘못 보여 순식간에 몰락하는 것을 종종 봤다. 커뮤니티를 오히려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 뒤에 모종의 이익 집단도 있는 것 같고, 보고 있으면 답답할 때가 많다.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전문가 수준의 댓글들도 참 많은데
건축을 전문적으로 한 사람도 건축을 쉽게 논하기 어렵다. 그런데 관련 없는 직종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석 박사 수준의 댓글을 단다. 본인도 검색하고 댓글을 달텐데, 그렇게 몇 번을 하다가 그 분야의 전문가인양 행동하니 건축주들이 현혹되기 쉽다. 안타까운 현상이다.
예비 건축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건축주들 중에 현장에서 집을 지어주는 우리보다 하루 왔다가는 도배사 말을 믿고 성화를 내는 이들도 있다. 그럴 때는 정말 섭섭한 마음이 든다. 매 공정을 사진 찍어 인터넷 카페에 올린 다음, 사람들의 댓글을 기다리는 건축주들이 있다. 모든 게 불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현장에서 묻고, 현장에서 소통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 이택영 씨가 지은 집들, 위부터 순서대로 안성 과수원 주택, 광주 신창동 주택, 대구 단산리 주택이다.
그런 건축주를 직접 만나 본 적 있나
아쉽게 나는 못 만나봤다. 이 집 건축주는 공사 내내 현장에 딱 4번 오더라(하하).
앞으로 빌더로서 이루고 싶은 것은
요즘은 망치를 잘 안 들려고 한다. 후배들이 더 클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내가 한 자리에 계속 있으면 후배들은 계속 노동력을 착취당할 수밖에 없다. 컷맨은 적힌 치수대로 하루종일 나무만 자르고, 건맨은 올려준 자재를 하루종일 박기만 한다. 수동적인 작업만 하다 보면 발전이 없다. 나 같은 사람이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 빠져 나가야지, 후배들이 더 커서 팀장이 되어 자기가 온전히 집을 맡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포지션을 말하는가
나는 건축주들과 더욱 소통하고 현장의 감리를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 CM 같은 매니지먼트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현장을 믿고 맡길 수 있는 팀장들을 많이 키워서, 긍정적인 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다. 회사가 아닌 패밀리로 움직이는 목수 집단, 이를 위해 함께 쓸 수 있는 열화상카메라나 전문 목공 장비들을 서서히 갖춰가고 있다.
목조주택 일을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시장에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보다 말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 '말칠행삼(말은 7이고 행동은 3)은 되지 말자'가 우리 팀의 모토인 이유다.
괜찮은 목조주택 빌더가 되기까지는 참고 견디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이론에 기술적인 노하우까지 축적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시간을 견디면 그만한 대가가 기다리고 있다. 젊을 때 열정을 갖고 현장에 매달리면, 30대 중반부터는 정당한 대접을 받으며 살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다.
돈은 성심성의껏 하다보면 언젠가는 따라온다. 집 짓는 일이 내 일생이라고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다르다. 그래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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