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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북*;;* /琴兒 인연 ▦

토요일

예전 내 책상 앞에는 날마다 한 장씩 떼어 버리는 달력이 있었다. 얇은 종잇장이라 금요일이 되면 바로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파란 토요일이 비친다. 그러면 나는 금요일을 미리 뜯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가 되면 허전함을 느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희망에 찬 토요일은 다시 다가오곤 했다.

 

 토요일이 없었던들 나는 상해에서 4년 간이나 기숙사 생활을 못하였을 것이다. 닷새 동안 수도승같이 갇혀 있다가 토요일 오후가 되면, 풀어 준 말같이 시내로 달아났다. 음식점으로 영화관으로 카페로, 일요일 오후 지친 몸이 캠퍼스에 돌아갈 때면 나는 늘 허전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 후 나는 토요일을 기다리는 버릇을 못 버리게 되었다.

 

 요사이는 주말을 어떻게 즐기느냐고? 토요일 오후에는 서영이와 같이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좋은 영화가 있으면 구경을 가기도 한다. 표를 못 사면 집으로 되돌아온다. 일요일에는 시외로 나가는 때도 있으나, 교통이 끔찍하여 집에서 소설을 읽는다. 그뿐이다. 그러나 한 달에 한 장씩 뜯는 달력에 하루하루 날짜를 지우며 토요일을 기다린다. 내 이미 늙었으나, 아낌없이 현재를 재촉하여 미래를 기다린다. 달력을 한 장 뜯을 때마다 늙어지면서도 나는 젊어지는 것을 느낀다. 달력에 그려 있는 새로운 그림도 나를 청신하게 한다. 두 달이 한 장에 실려 있는 달력을 나는 가장 싫어한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달력을 한 장 찢어 버리는 것은 제미니 7호를 발사할 때 카운트다운하는 것과도 같이 스릴이 있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퇴장하는 신부의 하얀 드레스는 금방 퇴색이나 된 듯하다. 사실 그 쑥스러운 상견례相見禮를 할 때, 그리도 기다렸던 결혼식은 이미 끝난 것이다. 그러나  허무도 잠깐, 그의 앞에는 새로운 희망이 있다. 행복할 가정, 태어날 아기, 시간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에 인색하지 않다. 그러기에 나에게는 언제나 다음 토요일이 있는 것이다.

 

 12월 25일 오후가 되면 나는 허전해진다. 초순부터 설레던 가슴이 약간 피로를 느낀다. 그러나 그 순간 시간은 벌써 다음 크리스마스 이브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종착은 동시에 시발이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새해는 오는 것이다. 또 한 해의 꽃들이, 또 한 해의 보드랍고 윤기있는 나뭇잎들이, 또한 해의 정다운 찻잔, 웃음, 죄없는 애기가 우리 앞에 있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겠는가?" 새해가 오면 나는 주말마다 셸리와 쇼팽을 만나겠다. 쇼팽을 모르고 세상을 떠났더라면 어쩔 뻔했을까! 새해에 나를 찾아올 화려한 파라솔이 안 뵈더라도 파란 토요일이 차례차례 오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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