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人造' 라는 말이 붙은 물건을 나는 싫어한다. 인조견人造絹, 인조 진주 같은 것들이다.
'인조위성' 이라고 아니하고, '인공위성' 이라고 하는 것도 나에게는 불쾌한 존재다. '인조'라는 말과 뜻이 같은 '합성合成'이라는 말이 붙은 물건도 나는 싫어한다. 예를 들면 합성주合成酒 같은 것이다. 그리고 '합성' 이라는 말이 아니 붙어도 '빙초산'이나 '사카린' 같은 것을 나는 또한 싫어한다. '사카린' 이 설탕보다 영양이 있고 꿀보다도 향기롭다 하더라도 나는 싫어할 것이다.
그리고 '플라스틱'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어야 할 때면, 진열장에 내논 '비프스테이크'를 볼 때와 같이 속이 아니꼬워진다. 물론 칠한 입술, 물들인 머리칼, 성형외과에서 만든 쌍꺼풀, 이런 것들도 '인조'란 말은 아니 붙었지만,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요사이 거리에는 '인조'요 '합성'으로 된 '나일론'이 범람하고 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색깔과 무늬, 흡사 도배지 같은 것도 있다.
독나방 날개 같은 적삼과 뱀 껍질 같은 치마도 눈에 띈다.
'나일론'은 공기가 통하지 않고 땀도 빨아들이지 아니한다니, 더운 몸이 옷 속에 감금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구멍이 숭숭 뚫어진 것도 있기는 하지만 망사 같아서 보기 싫다.
한여름 '나일론' 거리에 문득 하얀 모시 적삼과 파란 모시 치마가 눈에 띈다. 뭇 닭 속에 학을 보는 격이다. 모시는 청초하고 섬세하고 톡톡하고 깔깔하다. 아마 천사도 여름이면 모시를 입을 것이다.
모시옷은 풀이 죽거나 구김살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싱싱하지 못한 백합은 시들어 가는 백일홍보다도 보기 싫은 것이다. 곱게 모시옷을 입은 여인은 말끔하고 단정하고 바지런하여야 한다. 청초한 모시옷, 거기에 따르는 비취 비녀와 가락지를 본다는 것은 또 얼마나 산뜻한 기쁨이었던가! 엄마 손가락에 비취가 끼워지면 여름이 오고, 엄마 모시 치마가 바람에 치기 전에 여름은 갔다.
'아름다운 하얀 아마옷'이란 말이 영국 기도서에 있다. 양장을 하는 여자는 모시는 못입어도 아마는 입을 수 있다. 아마옷을 입으면 소매가 있든 없든 시원할 것이다. 단추나 지퍼를 등에다는 달지 말라. 이는 의뢰심의 표현이다.
밭에서 일하는 시골 여인네는 모시와는 인연이 적으나 그에게는 다행히도 튼튼하고 껄껄하고 시원하고 마음 아니 쓰고 입을 수 있는 베옷이 있다. 베나 아마나 다 떳떳한 모시의 족속인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무어라 하든, '나일론' '비닐' '플라스틱' 이런 것들은 내가 싫어하는 인공위성과 같이 나날이 발전할 것이다.
김제 돗자리, 담양 발, 한산 세모시는 아름다운 여름을 잃어버리고 옥가락지, 비취 비녀 따라 민속 박물관으로 가고야 말 것이다.
=====================2009년 03월 18일 저녁 9시 33분에 옮겨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