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크랩 북*;;* /문학 미술 ▩

[스크랩] 로트렉, 몽마르트르의 빨간 풍차

 

  자신의 환경을 견디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웃음이다. 반드시 바꿔야 하는 현실을 견디고 있는 것은 무지이고, 바꿀 수 없는 현실을 바꾸려 하는 것은 비극이다. 웃을만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웃을만한 현실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로트랙은 자신이 152센치에서 성장이 멈춘 육체의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받아 들였다. 반 고흐는 고통 받는 모든 것을 연민으로 바라본 화가다. 로트렉은 이와는 반대로 누구도(그 자신조차도) 동정하지 않았다. 로트렉은 자기 자신을 쳐다보는 것처럼 남들을 관찰자처럼 바라보았다. 그것이 그 자신을 견디는 방법이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환경을 판단하지 않고 분석했다. 그는 감상에 빠지는 것을 피하고 도덕에는 무관심했다. 그는 삶을 그 자체를 간파하기를 원했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반 고흐의 그림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로트렉의 그림은 감정에 대한 지식이었다. 반 고흐가 자비심이라면, 로트렉은 명철함이었다.

 

  

 로트렉의 작품은 동시대, 즉 모든 예술 형태에 대한 양식화樣式化가 강하게 보이던 시대의 어떤 다른 예술가의 작품보다는 고도의, 어쩌면 유일하게 뛰어난 표현에 도달해 있다. 따라서 로트렉의 작품을 대하면 모든 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듯이 보여, 완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참된 회화적 한 형식에 도달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는 예외적이라고 해야 할 화가로서, 한 시대의 기호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을 결정할 정도로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우리 시대의 회화의 창조자의 한 사람인 것이다. 그야말로 표현주의의 탄생에 앞서 표현주의를 예고한 화가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즉 사물 속에 주관적 표현을 포함시키고, 선과 색채라는 표현력을 통해 사물에 표정을 부여하는 회화를 이룩한 것이다. 무절제, 자유롭고 멋대로의 행동, 감각과 관능에 몸을 내맡김으로써 작품을 지탱시키고 작품의 길을 닦으며, 거기서 퍼져 나오는 모든 점을 작품 그 자체에 스며들게 하는 지점까지 도달했고, 그러면서도 시니컬할 정도로 절대적 자주성을 잃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로트렉은 독일 표현파와 비교하면 고전적 화가이다. 
                                                                                                                          - G. 베로지, 「툴루즈 로트렉」『엔포리움』

 

 

 Henri de Toulouse-Lautrec. La Goulue and Valentin, Waltz.

 

 

  

 

  로트렉의 일생은 불행했다. 귀족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어릴 적 겪은 두 번의 사고로 성장이 멈추었고, 작은 키와 혐오스러운 외모로 여성은 물론 가족으로부터도 냉대를 받았다. 그러나 운명에 대한 원망과 체념만으로 일관했다면 평범한 삶이었겠지만, 원망과 분노를 예술로 승화해냈다면 우리는 그것을 천재의 삶이라 할 것이다. 로트렉은 그런 삶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비록 가슴에 쌓인 원망과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알코올 중독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사는 동안 밝은 성격으로 많은 예술가들과 친분을 쌓았고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창녀와 같은 밑바닥 인생에게도 깊은 애정을 표시했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툴루즈 로트렉의 일생과 작품세계를 그린 『로트렉, 몽마르트르의 빨간 풍차』 개정판이 새로 나왔다. 시원스럽게 커진 판형에 컬러 도상을 추가하여 볼거리를 늘렸다. 툴루즈 로트렉은 ‘물랭루주’, ‘물랭 드 라 갈레트’ 같은 당시 파리의 유명 댄스홀에서 춤추는 무희들을 그린 그림과 포스터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심리 묘사에 뛰어났던 로트렉은 인상적인 색채와 날카로운 실루엣의 포스터를 그려낸 로트렉은 1890년대 파리 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의 포스터가 거리에 붙으면 수집가들은 그것을 떼어 가기 위해 혈안이 되기도 했다. 1890년대 당시로는 새로운 기술인 컬러 석판 인쇄술 분야를 개척한 그는 풍자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거리 광고를 발전시켰으며, 판화작가로 활동한 10년 동안 350점이나 되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Henri de Toulouse-Lautrec. Poster: Moulin Rouge - La Goulue.


 



로트렉의 작품은 대개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이 느낌을 위해 로트렉은 세심한 노력을 쏟아 부었다. 그가 아무리 그림을 그리는 데 익숙해졌다 할지라도 절대로 자신의 재능을 과신하지 않았다. 친구가 시가를 사기 위해 담뱃가게 앞에서 멈추면 로트렉은 이마나 목, 턱의 곡선과 웨이브 등을 몇 개의 선으로 빠르게 그려냈다. 이러한 끊임없는 연습 덕분에 그의 표현대로 ‘손에 익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즉흥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낼 수 있었다. 로트렉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의 즉흥적인 그림은 거의 그것으로 끝난 적이 없었다. 단숨에 그은 선이 연필이나 붓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처럼 가볍고 단순해 보이는 붓 터치 하나도 인내와 기나긴 연구의 결과로 얻어낸 것이었다.

 

 


Henri de Toulouse-Lautrec. In Bed. c. 1892-95. Cardboard. 70.4 x 51.3 cm. Louvre, Paris, France.

 



작품에 대한 무관심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웃음이나 농담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의 슬픔을 감추는 데 필요했던 것일까? 아마 권태로움에 지쳐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림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없었을 테니 화를 낸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림이 내 다리를 되돌려주는 것은 아니지. 최선의 선택으로 그림을 그릴뿐인데….’
이런 자조적인 생각을 하다가도 두 눈에 보이는 것들을 그려야 한다는 필연적인 열망이 그를 다시 캔버스 앞에 서게 했다. 그러면 마음이 가라앉고 즐거움이 찾아왔다. 하지만 자조적인 생각들을 잉태하는 고독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물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는 지하수처럼 숨죽이며 존재하고 있었다.

 

로트렉은 그림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술 마시는 것도 멈추지 않았다. 젊은 수탉처럼 온갖 난잡한 행동을 하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의 행동을 걱정하는 부르주와 알베르, 다른 이들에게는 냉소적인 무관심으로 응수했다. 그리고 웃었다. 그는 브뤼앙의 매춘부들, 즐거움을 주는 소녀들이라 불리는 이들을 그렸다. 그의 유화 속에서는 새로운 슬픔이 고통 받고 어리석은 여인들의 얼굴에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는 웃었다. 마치 이 슬픈 감정이 슬픔이 아닌 것처럼. 하지만 가끔씩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걱정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걱정하지 않는 거야. 왜냐하면 걱정하는 사람들은 걱정하고 있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 법이거든.”

 

 

 

 

 

로트렉, 몽마르트르의 빨간 풍차, 이 책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미술평론가 앙리 페뤼쇼가 쓴 로트렉 평전을 로트렉의 그림과 함께 엮은 것이다. 그저 막연히 알고 있던 로트렉의 삶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그의 생생한 육성을 듣게 한다. 또한 150여 컷에 달하는 도판을 통해 그가 구현하고자 했던 미술세계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한눈에 엿볼 수 있다. 페뤼쇼의 속도감 있는 이야기 전개는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로트렉이라는 인물에게 동화되도록 하며, 또한 간간이 소개되는 19세기 후반의 몽마르트르를 중심으로 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이야기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물랭루주의 화려한 조명 아래 열기에 들떠 술을 들이켜고 있는 로트렉을 만날 수 있다. 

 

 

 

 


 

출처 : 데자뷰(deja vu) & 자메뷰(jamais vu)
글쓴이 : 칼리오페Calliope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