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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탐방*;;* /AFRICA ▣

이집트 여행 다섯째날 오전-핫셉수트 장제전


핫셉수트 여왕의 장제전. 수만 톤의 모래 속에 몇 세기 동안 묻혀 있다가 세상에 드러났으며 

이집트 유일한 여왕 핫셉수트의 영혼을 기리는 제전으로 태양신 아문(Amun)과 

자신의 영혼을 위한 이중 기능을 가진 건물로 신전-사당의 성격을 담고 있다.
절벽의 일부인 듯 3단으로 건축된 장제전은 완벽한 좌우대칭구조로 현대의 건축물 못지 않다.



여행을 하다 보면 여행지와 관련된 인물에 꽂히는 경우가 있는데 이집트 여행에서는 람세스 2세와 그 왕비인 네페르타리, 그리고 신왕조 때 유일한 여성 파라오였던 핫셉수트였다.

 

핫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을 가기 위해서는 왕가의 계곡에서 다시 되돌아와야 했다.

아까 보였던 산 아래 달동네 비슷한 마을이 다시 보였다.

이 마을은 도굴꾼에 의해 형성된 마을이며 마을의 돌산 뒤편이 왕가의 계곡이라고 한다.

 

가이드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주 유명한 도굴꾼의 아들이 이집트 정부에 자수를 했는데, 정부에서는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심하다가 결국은 도굴꾼들을 모두 공무원으로 채용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현명한 선택이었단 생각이 든다.



구글지도에서 본 핫셉수트 장제전의 위치.

핫셉수트 장제전의 뒤편에 왕가의 계곡이 위치하고 있다.



도굴꾼의 마을. 사진에서 보이는 산의 뒤편이 왕가의 계곡이다.


 

버스에서 내려 따가운 대낮의 햇살을 받으며 장제전을 향해 걸었다.

앞에 가는 서양 여자는 탑에 반바지를 입었는데 등이 벌겋게 타서 보는 내가 마음이 짠할 정도로 엄청나게 더운 날씨였다.

장제전에 이르는 경사길을 오르니 기둥에 새겨진 핫셉수트 여왕의 조각상이 반긴다.

 

핫셉수트는 고대 이집트 제18왕조의 5번째 파라오로서 아버지인 투트모세 1세가 정비(正妃)와의 사이에서 둔 유일한 자식으로, 이복동생 투트모세 2세와 결혼했으나 병약했던 투트모세 2세가 요절하였을 때, 의붓아들이자 배다른 조카인 투트모세 3세가 어렸기 때문에 섭정을 하게 되어 공동 파라오로서 이집트를 다스렸다. (족보가 꼬였다.)

 

얼마 동안은 어린 왕의 섭정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국한했으나 BC 1503년 무렵 스스로 파라오의 자리에 올라 오직 왕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호루스'라는 칭호와 함께 전통적으로 왕만이 붙일 수 있던 인공으로 만든 턱수염을 포함해 파라오가 가지는 모든 표상들을 사용했다고 한다.

 

여왕으로서 강력한 권한과 독자적인 결정권을 가지고 이집트를 오랜 기간 통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에게 충성을 바치는 영향력 있는 관리들이 정부 내의 모든 요직을 통제하고 있어서 가능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핫셉수트는 치세 기간에 다수의 건축물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놀라운 건축물로 인정받는 것이 바로 이 장제원[Temple of Hatshepsut]이다.

 

이 신전은 현존하는 이집트 제18왕조의 대규모 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장엄한 건축물로서 당시 건축가인 세넨무트(이 사람은 여왕을 사랑했었다는 설이 있음.)가 멘투호테프 2세의 장제전 옆에 있는 절벽 구석에 일련의 주랑과 3층으로 이루어진 안뜰을 설계하여 완성한 것으로 여왕의 장례와 제사를 목적으로 생전에 지어졌다.

 

장제전의 모습은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완벽한 좌우대칭 구조를 하고 있었는데 이는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약 1000년이나 앞선 것이라 하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측면에서 바라본 핫셉수트 장제전




장제전 기둥에 새겨진 핫셉수트 여왕. 인공턱수염은 파라오의 상징이라고 한다.




3500년 전에 그린 그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선명하다. 

이런 색감이 지금까지 남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그림을 그리는 염료의 재료가 돌가루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네모난 구멍은 왕들의 묘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