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에서 살기 시작한 지 28년 째 되었나보다.
남편도 나도 이곳이 고향은 아니지만 교통이 편리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터를 잡게 된 이후 만족하며 살고 있다.
적당히 도시스럽고 그 만큼 시골스럽기도 한 점, 지리적으로 산과 바다가 가깝다는 점이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다 가보진 못했지만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살기좋은 지역이 아닌가 싶다.
특히나 순천만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살기좋은 도시에 선정되기도 하였으니 더이상 말이 필요없을 것 같다.
순천만 외에도 낙안읍성, 선암사, 송광사는 순천의 유명한 관광지가 되고 있는데 지난 추석 날, 가족들과 함께 선암사에 다녀 왔다.
명절이라 그런지 주차비와 입장료를 받지 않아 횡재한 기분이었다.
나무 그놀이 드리워진 계곡 옆의 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 상쾌한 공기로 호흡하며 여유롭게 선암사 주변을 돌아 보는데 봄이면 그 향기로 많은 이들의 발길을 잡는다는 선암매, 수령이 650년 이상이라는 소나무, 3m가 넘는 선암사 구시(대중공양을 위한 밥 보관 그릇) 등이 눈길을 끌었다.
한가한 가을 날, 가족과 함께여서 더 행복했던 선암사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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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산 선암사
선암사는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802번지로, 조계산(해발 884m) 장군봉 아래에 위치한다.
사찰 창건에 대해서는 백제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는 설, 신라말 도선국사의 창건설 등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물로 볼때 통일신라시대로 보기도 한다.
고려시대에는 대각국사 의천이 대각암에 머물면서 선암사를 중창하여 그 규모가 법당 13동, 전각 12동, 방26개, 산내 암자가 19개에 이르렀다 한다.
정유재란 때 왜군의 침략으로 전각이 불에 타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정유재란 이후 1660년에 경잠(敬岑), 경준(敬俊), 문정(文正)대사가 8년 동안에 걸쳐 중창불사를 하여 사찰의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숙종7년(1681년) 호암약휴가 제4차 중창불사를 주도하여 원통전, 관음상, 53불전, 대법당 오십전, 승선교 등 잇따른 불사가 이루어졌다.
순조 23년(1823년) 화재가 발생하여 대웅전, 명부전 등이 소실되어 다음해에 해붕과 눌암, 익종 세 대사가 제6차 중창불사를 하고 일시 고쳐졌던 산 이름을 청량산에서 조계산으로, 사찰 이름을 해천사에서 선암사로 다시 회복하여 명실상부한 옛 면모를 되찾게 되었다.
해방이후 1948년의 여순사건과 6.25로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비구`대처승간의 대립으로 일부 건물이 유실되기도 하였으나 최근 대부분의 전각이 수리되었다.
승선교를 비롯한 지정문화재 24점(국가지정 12점, 도지정 12점) 이외 선암사성보박물관에는 2,0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승선교(보물 400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다리로 알려져 있으며 무지개모양의 아름다운 곡선은 완전한 반원을 이루고 있다.
대웅전은 선암사의 흥망과 함께하며 정유재란으로 인하여 소실된 후 현종 원년(1660) 경잠(敬岑), 경준(敬俊), 문정(文正)의 3대사가 주축이 되어 대웅전을 중수하였으나 1759년의 화재로 다시 소실되고 1760년에 상월(霜月),서악(西岳)등에 의하여 다시 중건되었다. 그 후 1823년의 화재로 대웅전이 다시 타자 1824년 현재의 대웅전 건물을 중건하였다.
정유재란 이전에는 대웅전 자리에 2층의 미륵전이 존재했다고 한다.
※ 백과사전 참고,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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