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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탐방*;;* /터 ★ 키 ▣

아야소피아, 블루모스크 그리고 히포드롬 광장





20071, 혼자 터키-그리스 여행을 떠났었다.

모든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오롯이 내게 집중하고파 떠난 나만을 위한 여행이었다.

(사실 요즘 이런 충동을 느끼고 있다.)

 

여행 이틀째, 남아있는 사진 순서를 보니 아야소피아-보스포러스 해협 크루즈-블루 모스크-히포드롬 광장 투어의 순서이다.

역사적, 건축사적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건물로 인정받고 있는 아야소피아(Ayasofya, Hagia Sophia)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벽면에 복원된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 성화들이었다.

 

성당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모스크로 사용하게 되면서 회로 덧칠을 하여 몇 세기 동안 그 존재가 감추어져 있던 벽면의 모자이크들이 벽을 씻어내고 복원 작업을 한 결과 다행스럽게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아야소피아는 터키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타 튀르크(케말 파샤)에 의해 1945년부터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현재는 기독교인이나 모슬렘들에게 모두 성지로서 인정을 받고 있으니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본 아야소피아





아야소피아의 2층. 이슬람 율법상 여성들은 남성들과 함께 기도에 참여할 수 없어서 왕비는 지금 서있는 자리에서

1층에서 이루어지는 이슬람 종교 의식을 내려다보며 참여했다고 한다.



회칠을 벗겨내고 복원된 모자이크 성화들




아야소피아의 분수


 

아야 소피아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블루 모스크가 있다.

블루 모스크는 오스만 제국의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 중 하나로 여섯 개의 미나레트와 여러 개의 반원형 돔은 이스탄불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훌륭한 건축물이다.

 

블루 모스크 내부로 들어갈 때 복장 단속이 다소 엄격했었던 일과, 2층의 왕비가 기도의식에 참여했다는 자리에서 1층을 내려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모스크 내벽을 장식하는 장식 타일의 기조가 청색이기 때문에 푸른 모스크라고 알려지게 되었지만, 이 모스크를 짓도록 한 왕의 이름을 딴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가 정식 이름이다.



내 사진이 너무 흐리게 나와 픽사베이에서 가져온 블루모스크 사진





 

술탄 아흐메드의 이름을 딴 또 다른 장소가 있는데 히포드롬 광장으로 불리는 술탄 아흐메드 광장이다.

 

이 광장은 영화 벤허의 전차 경주의 배경이 된 터로 유명하며, 검투장으로 처음 지어져 이후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이었다가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인 532, 황제에 대한 불만으로 니카의 난이 일어나자 폭도들을 진압하고 처형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다.(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63596&cid=42864&categoryId=50859)

 

이 광장에는 이집트 카르나크 신전에서 가져온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와 오리엔탈 특급 열차로 실어 온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로부터 오스만제국의 술탄 압둘 하미드가 선물 받은 분수대가 있어 이 도시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여행 당시에는 보완 공사 중이었던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투트모스 3세(Tutmoses III)가 카르나크(Karnak) 신전의 제 7탑문 앞에 세운 오벨리스크이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2세(Constantius II, 337-361 재위)가 357년에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오벨리스크를 옮겼으며, 390년에 테오도시우스 1세가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네이버 지식백과]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 [Obelisk of Theodosius, Obelisk of Tutmoses III] (두산백과)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와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군을 물리친 그리스인들이 제작한 청동 전승기념비 사진.

청동기념비의 머리부분은 훼손되고 몸체만 남아있다.




19세기 말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오스만제국의 술탄 압둘 하미드에게 선물한 분수대.

오리엔탈 특급 열차로 이스탄불까지 운반되었다고 한다.